■ 머리글
산사에 승려로 살면서 ‘이게 글이 될까? 정말 시가 될까?’
많이도 망설였습니다. 그때그때 눈에 보이는 사계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 나만의 표현 방법으로 적어놓았다가, 모두 버리길 수백 번.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상좌 법연 스님이 어느 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 쓰신 글들은 제가 모아둘게요. 나중에 스님이 연세 드시어 기억 못 하실 때, 그곳에 가보고 싶으실 때를 위해 책으로 엮을게요. 그리고 자리 지키며 옆에서 읽어 드릴게요.”
저는 그 말에 크게 감동하고 공감했습니다. 그때부터 쑥스럽고 서툴지만, 나만의 표현으로 글을 써서 남기기로 했습니다. 시를 적어 본 적이 없어 시적인 감동도 없고 멋진 표현도 못 하지만, 승려로서 긴 여정을 살아오면서 그때마다 바뀌는 절집 환경은 언제나 처음 온 여행지처럼 한 발 한 발이 설렜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했습니다.
아름다운 여행은 첫걸음이 중요합니다. 첫 책 『법당가는 길』 시집을 출간한 뒤, 이번에는 『만남과 인연』이라는 두 번째 에세이 책을 묶게 되었습니다. 서툴고 부족하지만, 새로운 여행의 도전이랄까요. 설레며 이곳저곳 눈과 머리와 마음에 담아 글로 남기며, 잠시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절집은 언제나 바쁘지만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을 때 틈틈이 적은 글입니다. 승려들의 삶도 희로애락이 있어 여러분들과 삶이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산사에서 조금씩 조금씩 우러나오는 샘물처럼 흘러 흘러 피안의 세계로 향하는 스님들의 방편이라 생각하소서. 젊었을 땐 산보다 더 큰 꿈의 한 시절이 스님에게도 있었지요. 이 글을 읽으시며 꿈만으로는 살지 못하는 절집 수행자들의 삶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지만 실패한 삶은 아니지요. 꿈꾸는 한 말입니다. 지금 머무는 이곳과 가야 할 거기가 어디인 줄 모르고 헤매는 삶은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중생 모두가 공감하는 삶입니다. 다만, 우리 모두 자기만의 방식대로 이렇게 저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참 잘 살았소’ 하고 금의환향(錦衣還鄕)할 겁니다. 비벼볼 언덕도 없다고 한탄하지 말며 부모 원망하지 말며, 부처님 원망하지 말며, 예수님 원망하지 말며 나 자신을 포함한 그 아무도 원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눈에 선한 것 아름다운 것 보이면 잘 산 것 아닙니까? 다 살아내기도 힘든 여정, 세상을 탓하고 욕하고 야속하다 하기에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정진하는 수행자도 있지 않습니까.
높이 올라갈수록 흔들림이 크답니다.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은 바람이 잠시를 그냥 두지 못하고 땡그랑땡그랑 매일 울리고 있답니다. 이슬방울에도 골이 지듯이 미어지는 가슴,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래도 뼈와 살이 당신 몸에 붙어 있지 않습니까. 보고 듣는 것에 늘 감사하시길.
세상이 당신을 밀어내지 않는 이상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가슴 활짝 열고 한 가슴 않고 있는 그 번뇌, 부디 바람처럼 날려보내고 물처럼 흘려보내소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긴 여행 중에 이 글들이 길동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만남과 인연을 찾거들랑 여기 도림사에서 차나 한잔합시다.
■ 본문 중에서
산사음악회는 불교의 중심이 되는 행사는 아니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혜택이 시골까지 산골까지 이어지는, 불자들이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이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큰 행사이다. 행사 날을 받다 보면 햇빛도 없는 흐린 날씨가 정말 좋다. 건전한 사찰 문화로 우리 절집 스님네들의 삶으로 파고든 지 오래다. 처음에는 자리를 마련해 좌석도 듬성듬성 비어 있었지만, 우리 절 산사음악회는 벌써 수십 회가 넘었다. 지금은 의자가 필요 없다. 앉는 대로 의자가 되어버렸다. 법당 앞 무대에는 현란한 불빛도 은은하게 물안개 피어올라 산수화의 여백처럼 아름다운 경치, 감동적인 장면을 만든다. 도저히 말로 전달하지 못한 것을 음성공양 노래로 불법을 전한다. 어떤 이성과 세속을 아득히 초월한다. - 야단법석(산사음악회) 중에서
시주, 보시, 쌀 한 톨, 농사짓는 분들의 피와 땀이 서려 저울로 달면 일곱 근이라는 말이 있다. 오래전부터 절집에서 내려오는 스님들의 말이지만, ‘농민이 일곱 말 두 되의 땀을 흘려야 쌀 한 톨이 된다’고 하니 정말 귀하디 귀한 시주 쌀로 만든 밥이다. 우리는 이러한 음식의 귀함을 알고 먹어야 한다. - 절밥 중에서
공연히 쓸데없는 한 생각에 세월만 가버렸다 생각하지 말자. 그저 소중한 인연 스님들과 오래오래 살다가 기약 없는 날 혼자가 되어도, 홀로 지팡이를 짚고 산중에 우두커니 서 있어도, 늦봄에 핀 꽃송이의 향기를 생각하며 수각 속에 다시 핀 밝디밝은 모습으로 변해보자. - 아름다운 동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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