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템스강의 물빛에서 시작해 인생의 길목으로 이어지는 기록 타국의 겨울과 생활의 사계를 품은 남곤학의 수필집
『1998년 겨울, 나는 템스강 가에 서 있었다』는 한 해의 영국 체류에서 출발하지만, 그 물길은 저자의 인생 곳곳으로 이어진다. IMF의 한파 속에서 낯선 겨울을 건너던 가족의 기록, 아이들의 학교와 병원, 장터와 교회에서 마주한 타국의 일상은 이 책의 한 축을 이룬다. 그러나 책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감자밥과 보릿고개, 등잔불과 전등불, 막걸리와 소주, 낙동강과 고향의 기억, 사람과 물건과 풍경에 얽힌 생활의 사유가 함께 흐른다. 저자는 거창한 사건보다 사소한 순간에 깃든 삶의 이치를 오래 바라본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봄은 가까워진다”는 문장처럼, 이 책은 궁핍과 불안, 그리움과 감사, 여행과 생활을 한데 품고 지나온 시간을 다시 비춘다. 템스강의 물빛에서 시작해 인생의 길목마다 번져 가는, 담백하고 따뜻한 남곤학의 인생 여행 수기이다.
■ 본문 중에서
**1998년 1월 1일 목요일
찬란한 새해 아침, 해가 동녘에서 떠올랐다. 온 천지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태양. 우리는 저 태양을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고맙게 여긴 적이 있었던가. 영국 땅에서 맞는 새해 첫날을 기억하고 싶어 작은 카메라를 들고 창가에 섰다. 지평선 위로 두둥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한 해를 생각했다. 그러나 계획을 세우기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한국의 경제 사정과 불안한 환율 소식이 연일 들려왔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계획을 세우는 일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저 사정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아침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천 목사로부터 새해 인사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 전 귀국한 지인의 무사 도착 소식도 전해 들었다. 어머니께도 전화를 드렸다는데, 환율 때문에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닌지 몹시 걱정하신다고 했다. 전화 한 통조차 마음 놓고 하기 어려운 형편을 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