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글
보행(步行)에만 의존했던 옛날 옛적 그 시절엔 고개(嶺)에는 애틋한 많은 얘기가 함께하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새재는 기호(경기, 충청)지방과 영남(경상도)을 연결하는 영남대로(서울~부산) 옛길로써 많은 사람이 넘었던 고갯길입니다. 새재는 영남대로 옛길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고갯길이며, 또한 새재가 백두대간에 걸려있어 산세가 장엄(莊嚴)하고 골짜기가 깊습니다. 그 그윽하고 수려한 새재에 옛 선현(先賢)들의 풍류(風流)와 애환(哀歡)이 담긴 얘기를 <문경문화원>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聞慶文化』에 5년에 걸쳐서 게재하면서 많은 사연을 담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새재는 때 묻지 않은 청정 자연과 옛 관방시설인 관문(關門)과 현 건축물인 드라마세트장 등으로 국민관광지가 되어 사시사철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새재를 찾는 많은 사람에게 새재를 좋아하고 새재와 친숙해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聞慶文化』에 게재하였던 자료를 바탕으로 『문경새재』 단행본을 2018년 간행하였고,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재간(再刊)하게 되었습니다. 혹 부족하고 미비한 점이 있더라도 곱게 보아주시고, 『문경새재』가 새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본문 중에서
**고사갈이高思曷伊
문경 하면 새재가 연상되고, 새재 하면 문경이 떠오른다. 문경사람이 아니라도 문경새재는 언제부터인가 우리들 모두에게 상당히 친숙한 이름으로 다가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현 건치연혁 조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本新羅冠文縣 一云高思曷伊城 又云冠縣 景德王改冠山 屬古寧郡 高麗改聞喜郡 顯宗屬尙州 後改今名 恭讓王改監務 本朝太宗朝 改爲縣監
본래는 신라의 관문현(冠文縣)이다. 고사갈이성(高思曷伊城)이라고도 하고, 또 관현(冠縣)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에 관산(冠山)으로 고쳐 고령군(古寧郡)에 소속시켰던 것을, 고려 때에 문희군(聞喜郡)으로 고쳤고, 현종 때에 상주에 소속시켰다가 뒤에 지금의 이름(聞慶)으로 고쳤다. 공양왕 때에 감무로, 본조의 태종 때 현감으로 고쳤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문경현 건치연혁조
문경읍의 뒤편(북쪽)에 있는 산이 주흘산主屹山이고 주흘산이 문경의 진산鎭山이다. 주흘산의 모습이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지체 높으신 어르신께서 머리에 쓰시던 고급스러운 관冠(정자관)의 형상과 흡사하여 문경의 지명을 주흘산의 형상(冠)에서 따온 관산(冠文, 冠縣, 冠山)이라고 하였는데, 조금은 생뚱맞은 고사갈이高思葛伊라는 지명地名도 등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