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
언제부턴가 내게 글쓰기는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에 버금가는 일상이 되었다. 하다못해 종이에 넋두리라도 써대야만 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종이가 노트로 바뀌면서 일기가 되었고, 쓰기가 습관이 되자 수필을 공부하게 되었다. 수필에 전념하다가 글 쓰는 주체와 배경이 나로 한정된 쓰기로는 한계를 느껴,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소설을 공부하게 되었다. 수필가 서정범 선생님, 소설가 박영한 선생님과 임동헌 선생님. 그분들의 채찍과 당근을 받으며 나는 삶의 속내를 심마니처럼 헤집었다. 그러구러 장편소설 두 권과 단편소설집 한 권을 출간했다.
수필은 등단도 먼저 하고 작품 수도 많지만, 출간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진솔한 삶의 얘기라 애착은 크지만 남 보기에는 변변찮은 일상일 것 같아 세상에 내놓기는 낯이 서질 않았다. 그런데 이제 변변찮은 삶이나마 얼마 남지 않았다 싶으니 지나온 삶에 대해 애틋한 마음도 들고 위로도 받고 싶어졌다. 때로는 간절히 간구하고 때로는 분연히 타협하고 그러다가도 차분히 다독이며 지내온 세월이다. 돌이켜보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수십 년 세월을 꿋꿋이 견뎌낸 걸 보면 나를 소중히 여기는 신에게 부여받은 삶이었다는 생각에 감사하다. 누구든 스스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아마도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신에 의해 내보내 졌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의미 없거나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다. 수필은 그 삶의 의미와 소중함을 찾아가는 여정이란 생각에 부끄럽지만 엮어보기로 했다.
등단한 지 오래되어 어떤 작품은 내용이 시대적으로 맞지 않고, 어떤 작품은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다. 내 얘기다 보니 같은 소재로 다른 얘기를 쓴 작품들도 있어 이런 작품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되었다. 일단 한 권 분량의 작품을 선별하면서 내용상으로 분류해 보았다. 등단 무렵인 사십 대에서 오십 대에 썼거나, 그때의 일화를 추려 『생의 중턱에서』로 묶었고, 유년이나 젊은 시절을 회상한 내용은 『돌아보니 이런 적도』로 엮었다. 그리고 산을 좋아하다 보니 등산을 종종 했는데 그때 산에서 있었던 일이나 깨달은 이치를 그린 작품들을 『산에서 듣다』로 묶고, 마지막으로 황혼에 가까워지면서 삶에 대한 애착과 관조를 담은 글들을 『그래도 아직은』으로 모았다.
엮고 보니 내 삶을 사랑한 기록이다. 그것도 지독한 짝사랑이다. 그토록 무정한 삶에 무던히도 매달렸다. 그래도 짝사랑 덕에 행복했다.
2025년 여름 이병숙
■ 본문 중에서 *제비
제비 본 지가 꽤 됐다. 대도시라 그러려니 했는데 TV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보니 농촌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과다한 농약 살포로 먹이가 줄어든 데다 농약 먹은 벌레를 먹고 무정란을 낳거나 부화율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사람들의 냉대였다. 날아드는 제비를 보고 겁을 주어 내쫓는가 하면 제비집 터를 뜯어내고 행여 다시 지을까 봐 헝겊으로 덮어 놓았다. 제비의 배설물이 집안을 더럽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는 집을 짓지 않는다는데 어찌 그리 모질 수 있는지 TV를 보면서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내게는 제비에 대한 남다른 기억이 있다.
결혼하고 몇 년 안 돼 동두천에서 살 때 일이다. 그때 우리는 아홉 가구가 사는 집에 세 들어 살았다. 넓은 마당 중간에 담이 있어 한쪽의 네 가구만 사는 줄 알고 얻은 것이다. 가구 수가 많다 보니 전기세로 입씨름이 많아 집주인은 가구마다 전기 계량기를 각각 달아 놓았다. 봄이 되자 제비 한 쌍이 날아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네 집 처마 밑에 집짓기를 바랐다. 아마도 가난한 살림 탓에 흥부네 같은 기적을 바랐으리라. 이미 제비 집터가 있거나 제비가 집짓기 좋게 판자를 대 준 집은 당연히 자기네 집으로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집 저집 처마 밑을 살피고 난 제비 부부는 모두의 예상을 빗기고 가장 좁고 불편한 우리 집 전기 계량기 위에다 집터를 잡았다. 무척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고 그 옹색한 곳에 집을 짓는 제비의 행동을 무슨 곡절이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들처럼 제비가 우리 집에 집짓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부러운 시선이 싫지는 않았다.
얼마 후, 다섯 마리의 새끼제비가 부화했다. 먹이를 물고 오는 어미를 향해 한껏 목을 늘리며 자지러질 듯 내지르는 새끼들의 지저귐은 삶의 진한 생동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늘 옹색한 집이 불안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필사적인 먹이다툼을 벌이던 새끼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아직 솜털 속에 눈알만 불거진 새끼의 죽음은 어떤 불길함을 예고하는 듯 섬뜩했다. 이태 전 시댁에 살 때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처음엔 한 쌍의 제비가 날아들었다. 그들은 전부터 있던 집에 윗부분만 조금 더 쌓아 신방을 차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한 마리가 더 날아와 빨랫줄에 앉아 있곤 하는 게 아닌가. 동무려니 했는데 하루는 무서운 싸움이 벌어졌다. 한 마리는 집에 앉아 있고, 두 마리가 빨랫줄에 앉아 아주 요란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둘은 마치 독기 오른 아낙의 악다구니 쓰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말로는 안 되겠던지 나중엔 육탄전을 벌였다. 처음부터 기세가 등등했던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땅바닥에 쓰러뜨리고는 짓누르듯 마구 쪼아댔다. 아무래도 열세에 놓인 제비가 위태로워 보여 나는 다급하게 아랫방 할머니를 불렀다. 낮잠에서 깨어 방문을 여는 할머니에게 “제비 죽어요!” 하고 소리치며 제비를 가리켰다. 그제야 땅바닥에 엉겨 붙은 제비를 보며 화들짝 놀란 할머니는 엉겁결에 고무신 한 짝을 집어 던졌다. 고무신짝에 비껴 맞고서야 공격을 하던 제비는 몸을 떼어 빨랫줄에 앉았다. 앉아서도 분이 안 풀리는지 연신 “까르르 꼬르르” 집에 앉아 있는 제비를 향해 지껄여 댔다. 그사이 밑에 깔렸던 제비는 몇 번 날갯짓을 해보며 몸을 추스르더니 있는 힘을 다해 집 밖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싸우다 빨랫줄에 앉아 있던 제비도 놓칠세라 쏜살같이 쫓아 날아갔다. 그 기세가 얼마나 무섭던지 죽이러 쫓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집에 앉아 있는 제비를 가리키며 필시 저놈이 첩을 얻은 거라고 했다. 제비는 절대 첩 꼴을 못 본다며 오래전 고향집에서 본 일을 들려주었다. 그해에는 세 마리의 제비가 날아들었단다. 그런대로 집을 짓고 알도 낳고 부화까지 해서 잘 사는가 했는데 어느 날 새끼가 모두 죽었다. 살펴보니 새끼 입속에 작은 나뭇가지 같은 것이 잔뜩 채워져 있더란다. 첩이 그랬는지 본처가 그랬는지 못 먹을 것을 일부러 물어다 먹였다는 것이다. 그 후 한 마리는 날아가고 두 마리만 남았는데 더는 알을 못 낳고 여름을 나더라는 얘기였다.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뒤쫓아갔던 제비가 돌아왔다. 빨랫줄에 앉아 있는 모습이 큰일을 끝낸 후 평정을 찾으려고 심호흡을 하는 듯 당차 보였다. 쫓겨간 제비의 생사가 궁금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으니 알 수는 없었다. 그 일 이후, 제비 내외는 결국 알을 낳지 못하고 여름을 나고 갔다. 당시 아이가 없어 늘 애태우던 나는 둘이서만 살다 간 빈 제비집을 바라보며 동병상련의 깊은 서글픔에 잠겼었다. 그런 기억과 함께 새끼제비의 죽음은 며칠을 두고 마음을 우울하게 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남은 네 마리의 새끼가 그 좁은 집에서 아슬아슬 곡예를 하듯 잘 자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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