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내면서
책을 내면서 —축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축제를 경험하면서도 정작 축제인 줄을 모르고 지내왔다. 이제야 생각하니 음악과 춤, 술과 떡이 있어야만 축제인 것은 아닐 것이었다. 함께 웃고 함께 눈물짓고 함께 안타까워하면서 서로를 보듬어주는 순간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축제가 아닐까 한다.
유년 시절 보리누름에 도리깨질로 비지땀 흘리던 순간이 내게는 축제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수월찮은 세월이 흘렀다. 한때는 일만 하다가 좋은 것들을 놓쳤다며 아쉬워도 했지만, 왜 그토록 열심히 일을 했는가는 진지하게 곱씹어 본 적이 없었다. 일이 주는 보람과 만족, 기쁨과 성취가 있었기에 일에 몰두하였을 터인데도 말이다. 그런 보람을 한정 없이 누렸으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였던가.
오늘도 강남역 근처 작업실로 나는 출근한다. 빌딩 숲 사이로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글 한 편을 쓴다. 지인과 메일로 사연을 주고받고, 찾아온 친구와 맛있는 점심 식사도 즐긴다. 퇴근 무렵이면 ‘오늘 하루 즐겁게 지냈구나’라는 뿌듯함에 젖는다. 나에게 축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축제는 또 있다. 올해는 결혼 45주년, 소중한 반려자 주선애 권사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 책을 드린다. 사랑하는 두 딸과 사위, 손녀 모두 축제의 주인공들이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한 축제의 연속이기를 기도한다.
바쁘신 중에도 찬평을 아끼지 않은 홍정화 평론가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도서출판 청어 이영철 대표와 관계자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아름다운 축제가 늘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년 12월 함박눈이 쏟아지는 창가에서 박인목
■ 본문 중에서 나뭇가지로 햇볕을 가린 멸치상자에는 갓 잡은 멸치가 펄떡거린다. 어머니는 참새미 물로 횟감을 장만하시고, 광속에 아껴 두었던 농주를 꺼내 오신다. 도리깨질 일꾼들이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잡고 앉는다. 치자나무 그늘 아래에는 멸치회 잔치가 펼쳐진다. — 「보리누름 축제」 중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 앞에서 뒤돌아보니 그때까지 두 모녀는 손을 흔들고 있다. 우리 내외도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그 순간 코엘 칼링처럼 예쁜 손녀의 목소리가 가슴으로 날아와 꽂혔다. “안녕!” 아내의 눈에는 아까부터 이슬이 맺혔고, 나도 코가 찡했다. — 「싱가포르의 코엘 칼링」 중에서
미망인 심 여사는 울먹였다. “서너 달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부엌일을 도맡아 하는 거였어요. 밥하는 건 물론이고 반찬도 만들고 냉장고 청소도 해주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어요. 새벽에 일어나면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도 틀어주었답니다….” 노부모 봉양에 힘든 아내한테 진 무거운 빚을 두고 그냥 떠날 수는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학처럼 살다간 친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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