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 “이야기꾼들은 가난하게 산단다.” 아버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야기꾼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팔십을 넘긴 지금까지 소설 공부만 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궤적을 더듬어 보니 눈물이 핑 돕니다. 왜 하필이면 이야기꾼이 되었을까요? 왜 내가 팔순이 되는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소설을 쓰고 있는 걸까요? 대답은…? 이승의 여행길이 팔십 년이라는 기념으로 작품집을 만들어봅니다. 항상 정성을 다해보지만 늘 부끄러울 뿐입니다.
―노을이 비껴가는 들녘에서 홍인표
■ 본문 중에서
홍인표의 소설에서 현재는 두텁다. 그에게는 2025년 만이 현재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이 현재화되어 소설로 기록된다. 역사의 더께에 묻혀있던 사건 하나하나가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화석으로 굳어져 가는 일들을 현재로 호명하는 일이 이야기꾼의 사명이라 보았을 때, 홍인표는 천상 이야기꾼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에 80세에 이르렀으니, 이야기꾼으로 산 세월이 70년 가까이 되었다.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먼저 소설적 삶을 살았던 건 아닐까. 일제강점기와 6・25 전후에 벌어진 믿기 어려운 사건들, 5・18 때 목격한 암매장 사건, 광주교도소에 근무할 당시 수감자였던 김남주 시인과의 만남 등이 이미 소설이다. 그러니 어찌 이야기꾼 노릇을 안 할 수가 있겠는가. 거기다가 ‘뱁댕이, 들말, 끌개, 바디, 도투마리, 겨끔내기, 벳불, 곁두리, 볼씨, 쌀개, 걱정가마리, 감발저뀌, 어웅하다’ 등 사전의 귀퉁이에 묻혀있던 말들을 살려내는 솜씨는 감칠맛 난다.
―이대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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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댁은 고샅을 살걸음으로 걸어갔다. 손에는 수건과 풀솔을 들고 있었다. 영산댁 사립문을 들어섰다. 머리에 수건을 썼다. “벳불이 싸지도 않고 적당하게 잘 만들어졌네.” 성전댁은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 구석에 묘처럼 만들어 놓은 벳불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두워지면 베매기를 할 수 없으니까… 꼭두새벽부터 서둘렀겠지?” 성전댁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다가갔다. 해돋이를 바라보았다. 금방 솟아오른 태양이 동산의 능선 위에 얹혀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눈이 침침하여…” 성전댁은 땅거미가 드리워지면 베매기를 할 수 없었다. 잘 보이지 않았다. 저녁노을이 지기 전에 베매기를 마쳐야 했다. “겨우내 밤잠 자지 않고 물레질해서 자아 놓은 실은 얼마 되지 않지만… 해동갑해서 마치려고… 첫닭이 울 때부터 일어나서…” 영산댁은 부지깽이를 들고 벳불을 뒤적거리다가 일어났다. 연기를 흩뿌리는 덜 탄 뜬숯을 꺼내었다. 눈물을 닦았다. “준비는 다 되었으니… 내 일만 남았네. 뱁댕이도 넉넉하고… 베풀도 적지 않겠어.” 성전댁은 팔을 걷어 붙었다. 새끼의 매끼로 가지런하게 묶어 놓은 뱁댕이의 다발을 바라보았다. 동이에 담겨있는 베풀을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풀의 묽은 정도가 적당했다. 뱁댕이는 베매기를 마친 실을 도투마리에 감으면서 실오라기가 서로 엉키지 않도록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 섶의 막대기나 댓조각을 말했다. “들말은 영산양반이 단단히 고정시켜주었는데…?” “어련히 알아서 했겠어. 나머지는 내가 해야지.” 성전댁은 도투마리를 들말에 걸쳤다. 마당의 저쪽에 놓여진 끌개를 바라보았다. 적당한 거리였다. 끌개 위에 다듬잇돌까지 얹혀있었다. 바디에 끼워져 뒤쪽으로 나와 있는 실을 기다란 끈으로 묶었다. 그 끈을 도투마리에 메어 연결했다. 도투마리를 돌려 감았다. 영산댁은 도우미였다. 실타래를 들고 있었다. 벳불에 닿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벳불에 실오라기가 탈까 무섭네. 실타래를 더 높이 들어.” 성전댁은 날줄을 벳불 위로해서 길게 늘어뜨렸다. 실타래를 마당 저쪽에 놓아둔 끌개로 가져갔다. 끌개의 앞쪽에 꽂아져 있는 끄싱게에 두리두리 말았다. 단단히 메어 묶었다. 남은 실타래를 다듬잇돌 위에 얹어놓았다. 날줄이 팽팽해지도록 끌개를 약간 뒤로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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