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문학은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것 응원의 힘으로 생을 밀고 나간다는 것 시로 가는 먼 길이 두렵지 않다는 것 부족함도 당당해야 한다는 것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나를 함부로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 고마움을 가슴 깊이 품어야 한다는 것 값지게 살아야 한다는 것
꾹꾹 눌러 또 한 그루의 시집을 심는다 2025년 여름 이윤선 씀
■ 본문 중에서
우리는 모두 힘이 되는 언어,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이윤선 시인의 언어는 쉬지 않고 거듭나기를 반복한다. 자연과 삶, 기억과 사물 위에 빚어내는 예쁜 대화다. ‘의자’처럼 움직이지 못한 사물 시에서 출발한다. 출렁이는 들녘의 ‘보리밭’과 길 위에서 시간이 켜켜이 흐르는 삶을 살피는 언어들이다. 열여섯 권의 시집을 펴내는 동안 늘 시의 언어를 새롭게 해석하고 미적 지평을 갱신해 왔다. 이번 시집 『봄의 신작들』 역시 마찬가지다. 시인이 변한다는 것은 원숙해진다는 것이다. 원숙해진다는 것은 무한정 자신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베르그송(Henri Bergson, 1959~1941)을 인용할 때, 이것은 시론(詩論)처럼 들린다. 이윤선 시인의 시는 늘 빛을 말리는 시어다. 나만의 세상을 만나면 더 멀리 가 있다. 상상하지 못하는 곳까지 가고 있다. 물의 감정, 나무, 날파리, 의자, 소나무 등 시집을 지배하는 둥근 형상들에는 변모해가는 시인의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면서 존재의 영성(靈性), 타자와 만나는 시간, 혼자 있는 고통, 자연이라는 절대 타자, 세상 읽기, 사라져 가는 마을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담은 주제들로 다채로운 빛깔로 변주된다. 이윤선 시인의 시는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빨강 실이다.
―최창일 (이미지 문화평론가)
*봄의 신작들
겨울을 사그라뜨린 봄이 문을 열었다 흙의 겉장을 연 새싹들의 순한 동화 그 위에 꽃들이 페이지를 겹쳐 넘어온다 새들의 둥지가 이사 드는 짧고 긴 봄의 문장들 생명력이 가득한 노래들 봄을 끌어올려 휘감는 절정 햇빛의 가장 강력한 그 표제작 가지 끝을 밀어올린 잎들 빈 허공으로 부풀어 오른 그 기적을 읽는다 향기를 푼 환한 점령 시원한 바람이 속독을 하느라 바쁜 봄 쏟아져 오고 쏟아져 가는 봄 단편소설처럼 끝을 향해 빠르게 스러져가지만 걱정할 것 없다 하늘과 땅의 공조는 흐드러지게 우거진 장편을 펼쳐놓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 생도 그 탈주로를 따라 환승해서 꼼꼼히 읽어볼 일이다
*석양 자운봉이 높아 힘들어하던 해 장암역 쪽 산 능선으로 미끄러져 넘어간다 몸뚱어리 하나만으로 생의 시작과 끝을 허공을 뚫고 나와 지상의 배꼽들을 만져주는 일은 아주 고된 일이어서 4월의 해는 숨비소리 능선에 풀어놓는다 어깨를 낮춘 산이 기꺼이 맞아들이는 저물녘 순한 마음끼리 이마를 맞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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