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개봉 예정작 <덕혜옹주>로 주목받는 조선의 마지막 황실 이야기 덕혜옹주를 친딸처럼 아끼고 신분을 버리고 가수가 된 이석을 키운 비운의 황후 빼앗긴 역사와 함께 저물어간 고결한 그녀의 숨결을 고스란히 되살린 서충원 장편소설
■ 본문 - ‘작가의 말’
세월이 흐르니 달라져 보이는 게 있는가 보다. 내가 바라보는 역사관도 그랬다.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에서, 역사는 어느 날 문득 반가운 손님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어렸을 적 윤비는 분명 살아있었다. 역사의 측면에서 본다면 50년의 세월은 결코 짧지만은, 그렇다고 길다고도 말할 수 없다. 애초에 나는 이 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역사에 관한 책들을 읽어 가면 그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도 욕심을 내게 되었고, 누구를 써 볼까, 하며 고심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윤비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려내고 있었다.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이처럼 문학은 운명 이 아니고서는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젊은 시절 내 영혼을 뒤흔든 전혜린도 그랬고, 그 이후, 친일을 빼고는 버릴 게 없는 춘원 이광수도 내 마음 한편에 자리했다. 쓰는 동안 그때마다 부족한 내용들을 보충하느라 쓰고, 공부하기를 반복했다. 4년에 가까운 세월이 되고서야 그런대로 윤비의 실체가 보이는 듯했다. 그래도 나는 이 기간 동안 대체로 행복했다. 무엇에 빠져든다는 즐거움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유일했던 순간임을 기억한다. 이제는 모두 독자의 몫이 되었다. 윤비는 하나의 살아있는 실체였다. 윤비가 걸어온 길을 우리는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윤비가 걸어온 험난한 여정의 길이기도 하다. 윤비는 낙선재에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왕비는 궁궐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궁궐의 법도를 깼다. 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의해 돛대도 없이 떠다니는 몸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 회한이 한으로 남아 평생을 굴욕과 비운 속에서 햇빛 한번 제대로 볼 수 없었음을 그 누가 알까. 나는 소설을 쓰기 전에 유릉에 잠들어 있는 윤비의 무덤을 찾아가서 그 앞에 고개를 숙여 당신의 삶을 그려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솔직히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10년 전쯤만 썼더라면 싶었다. 세상에는 윤비를 직접 만나본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평생 동안 윤비를 곁에서 모셨던 김명길 상궁이 쓴 『낙선재 주변』이라는 책을 구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그 금쪽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어디 그뿐인가.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와 춘원의 『민족 개조론』과 구한말의 실생활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나·소년편』, 김을한의 『인간 이은』 등의 많은 책들은 이 소설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애당초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역사서적 300권쯤은 읽고 난 뒤에 쓰고 싶었으나, 겨우 절반쯤에 머무르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책들을 통해서 얻은 지식은 밑바탕은 되었을망정 이 소설의 활력소는 되어주지 못했다. 사실과 상상을 넘나들어야 하는 소설에는 사실 그대로를 그릴 수 없었음을 일러둔다. 그동안 여러 차례 드나들던 창덕궁의 후원과 낙선재. 어느 곳 하나 윤비의 눈길이 비껴간 곳이 있을까 싶다. 그곳엔 지금 윤비도, 덕혜옹주도, 영친왕도 있지 않다. 휑한 바람만이 주인을 잃은 낙선재 주변을 맴돌 뿐이다. 이 책이 윤비에게 있어 누가 된다면, 모두 용서하라고 윤비 앞에 큰절 한번 올리고 싶다. ‘마마! 이 소인 큰절 한번 받으시옵소서…….’ 청어출판사와의 인연에 깊이 감사한다. 저자를 20년 전쯤 어느 모임에서 한 번 보았다고 대번에 기억해내는,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는 이영철 사장님께 고마움을 전하며, 아울러 편집자 여러분의 수고에도 경의를 표한다.
서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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