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중에서
사라진 개인의 삶에 역사의 빛을 비추다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며 고백하는 것, 거기다 자신의 삶의 굽이굽이에서 함께 지낸 사람들의 증언을 첨언하는 것. 그러나 그 사람이 이미 28년 전에 사라진 사람일 때, 그리고 함께 한 친구며 동료들마저 저 세월의 심연으로 삼켜져서 더는 증언할 수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를 기억하는 남은 사람들을 만나 각자 자신이 겪은 시간 속에서 건져 올린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어 보는 것. 그러나 그 속에도 깜깜한 빈 구멍이 너무나 많다. 자식의 기억 속에는 아버지 김희모만 있을 뿐, 소년 김희모, 청년 김희모, 남자 김희모는 없다. 친척들의 기억 속에는 외삼촌 김희모, 형부 김희모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의 지도를 받은 유아교육 후학들의 기억 속에는 재능개발연구회 회장 김희모만 남아 있다. 캄캄한 굴속을 더듬이며 헤매다 어쩌다 조금 고여 있는 샘물을 만나기도 하고, 몇 번이나 모퉁이를 돌아도 출구가 보이지 않아 주저앉고 싶기도 했던 막막한 작업이었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졌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나는 역사라는 필터를 끼워서 그를 살펴보기로 했다. 한 사람의 삶은 그가 살아낸 시대라는 틀에서 떼어낼 수 없는 법이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 관북지방에서 자라며, 서양 선교사의 교육을 받은 식민지 청년 김희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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