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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네브행 열차
안유환
소설
4*6판/360쪽
2021년 6월 20일
979-11-5860-638-1
15,000원

■ 작가의 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크신 사랑의 손길에 붙들린 한 소설가는 20년 동안의 소설 쓰기를 내려놓고 수도 생활에 들어갔다고 했다. 나는 20여 년의 목회 생활을 마치고 비로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얼핏 내가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삶이란 언제나 새로운 자리로 옮아가는 발걸음인가? 10년 가까이 단편과 몇 편의 중편을 쓰면서 언제쯤 장편을 하나 쓸 수 있을까, 이따금 생각했다. 2019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에 긴 펜을 들었다. 굳이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 첫발을 내디딘 것은 중간에 주저앉지 않고 완주하려는 나름의 각오였다. 이듬해 부활절이 다가왔을 때 한편의 장편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퇴짜’를 맞으면서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 또 한 해가 흘러갔으나 퇴짜는 귀한 독선생이었다. 그동안 소설 제목은 ‘소금기둥’에서 ‘생수의 강’으로, 그리고 ‘주네브행 열차’로 바뀌었다. 세 번째 사순절을 맞으면서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크고 작고, 높고 낮은 모든 집은 땅 위에 세워진다. 소설의 집을 세우는데도 땅이 필요하다. 작가는 누구나 자기만의 터전을 지니고 있다. 그 터전이 작가에게는 소설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는 자리이다. 장편소설 『주네브행 열차』는 나의 고향에서 출발한다. 내 고향은 영일만을 배경으로 한 아름답고 한적한 농촌이었다. 그 마을에 세워진 교회가 주인공의 눈을 밝혔고, 그는 비로소 ‘사랑’을 펼치려는 확실한 꿈을 꾸게 된다. 그것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은 누룩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그 마을엔 동양 최대의 제철단지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모두 실향민이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그의 소명감 중심에는 언제나 ‘땅끝’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학의 나무는 어디까지 자랄 수 있을까? 나의 문학은 달팽이처럼 조금씩 기어올랐다. 자라는 것은 무엇이나 생명을 지니고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동물도 식물도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자란다. 문학의 체질은 꺼지지 않는 생명력이기에 그 세계를 끊임없이 키워간다. 아무도 그 높이와 깊이와 폭을 한정할 수 없다. 그것은 하늘 끝까지, 바다의 깊은 골짜기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서사문학은 야곱의 사닥다리이다. 우리는 그 사다리를 통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을 오르고, 아무도 내려갈 수 없는 자리에까지 내려간다. 땋은 머리처럼 엮어진 한편의 이야기는 고통이 피워낸 환희이다. 느지막이 밀짚모자를 쓰고 텃밭을 가꾸던 재미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수확을 끝내는 산수의 여명에 씨앗을 뿌리다니! 내일 아침 독자들의 가슴에 정답게 돋아날 새싹을 그리며, 언제나 중심이 될 수 없는 땅끝으로 사랑의 긴 편지를 띄운다.
반세기를 손잡고 걸어온 생의 동반자에게 새삼 무슨 변명으로 위로를 전하랴. 오는 12월이면 금혼(金婚)을 맞는 사랑하는 아내 순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21년 부활절에
白餘 안유환



■ 본문 중에서


형기도 일 년에 한두 번씩 서울에 사는 병규 아저씨가 올 때나 아버지가 함께 있을 때 생일선물로 사다 주는 과자를 먹어볼 수 있을 뿐이었다. 형기는 형진에게 과자가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따져 물어보다가 과자를 얻어먹지 못하면 자기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겐 용돈이 없어서 가게에서 파는 과자를 보며 침만 삼킬 때가 많았다.
돈이 귀하기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는 추수를 끝낸 뒤 마을의 ‘쌀장사’를 불러다 찧은 쌀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 그러다 돈이 모자라면 할머니는 할아버지 몰래 한 말씩, 두 말씩 쌀을 팔아 필요한데 썼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할머니에게 가용을 넉넉히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형기와 설자는 둘 다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형기는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보다는 객지에 계시는 어머니가 더 보고 싶었다. 또 한 가지 소원은 설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었다. 한밤중 제사를 끝마치고는 설자네 식구와 함께 교자상에 둘러앉아 밤참을 먹었다. 설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닮지 않고 부처님 식구처럼 얼굴이 하얗고 말씨는 그윽한 노랫소리 같았다. 달처럼 둥근 얼굴에 쌍까풀이 선명하고 형기 앞에서는 언제나 미소 짓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형기는 할머니와 함께 제사를 지내러 갈 때가 가장 즐거웠다.
백형기의 머릿속에는 지금도 출근한 아버지를 두고 가족들만 피난하던 일들이 동영상처럼 선명하다. 약간의 생필품과 노약자들을 태운 소달구지를 앞세운 피란행렬은 줄을 이었다. 콩을 튀기는 것 같은 총소리와 이따금 지축을 울리는 포격 소리가 십 리 밖에서 뒤쫓아와도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두려워할 줄 몰랐다. 한길 옆 논들에는 아직도 모내기를 못 한 사람들이 못자리에서 뽑은 모를 다뤄놓은 논바닥에 이리저리 마구 흩뿌리는 모습도 보였다. 석 달 뒤 피란에서 돌아왔을 때는 뿌려놓은 모들이 심은 것 못지않게 잘 자라 어느 정도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한복음21:15)
그 말씀은 그의 가슴에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보다 더 어지러웠던 지난날 삶의 흔적이 부끄러웠다. 한때 처음 사랑과 신실한 믿음으로 주님의 교회에 봉사하던 자리를 떠나 세상으로 흘러갔다. 직장인으로 일할 때는 술을 마시며 자유로운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에게 믿음은 빛바랜 이름표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더 힘 있게 그를 감싸고 있었다.
백 목사는 보이지 않는 성도들에게 ‘기다림’에 대한 편지를 썼다. 첫 번째 편지에는 아직 아무런 답이 없었지만 주님의 크신 사랑을 담아 두 번째 편지를 발송했다. 그리고 혼자서 용마산 마루에 올랐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싸늘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교회주변 마을은 아직도 조용하다.
병상에서 어른거리던 ‘마지막 일기장’의 잔상은 퇴원할 때 환자복과 함께 미련 없이 벗어버리고 왔는데 그 그림자는 새해 아침 신문에서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시상식 자리에 참석해서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던 정아의 모습을 먼발치에서라도 한번 보고 싶다. ‘부르심’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정아를 사랑하던 마음으로 ‘여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을 변명이라도 하고 싶다.
일기장을 불태웠으나 사랑은 태울 수 없었다. 태울 수 없는 사랑도 사노라면…….

제1부
제2부
제3부


해설
신앙의 실천을 향한 여로_송명희(문학평론가, 부경대 명예교수)

작가의 말

백여(白餘) 안유환


1942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신문기자로 12년 동안 일하다 목회자가 되어 23년을 목회했다. 한동안 수필과 시를 쓰다 2012년 『한국동서문학』 신인상을 통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 『둥근별』 『그는 언제나 맨발이었다』, 수필집 『매미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건드리는 노래』, 시집 『천사들의 휴양지』 『서설』 『그림자의 귀향』, 에세이집 『발틱해의 일출』, 목회서신 『주님의 얼굴을 보는 사람들』 『흔적은 아름다워야 한다』 등 10여 권을 출간했다. 광나루 문학상, 부산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부산 크리스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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